게임을 끝내지 못 하는 까닭을 찾아서 1 - 추징

 







한 줄기 선택

한 고등학교 앞, 오후의 나른함 속에 잠겨든 교문 너머로 왁자지껄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마치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주술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을 삼킬 듯 검은색으로 도장된 정보차량의 내부는 외부의 빛 한 점 허용치 않은 채, 오직 열다섯 개의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 빛 속에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 사내가 복잡한 자료들의 물결 위에서 조용히 자신의 시선을 옮겨가다가, 마침내 하나의 화면에 꽂혔다. 모니터 너머의 인물이, 마치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 중 가장 예리하게 다듬어진 칼날처럼 그의 시선을 붙든 것이었다. 잠시의 침묵 후,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차량 내부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나직이 울려 퍼졌다. "괜찮군. 이 정도면 충분히 검증된 강인함이 보이지 않나. 그래, 저 아이를 선택하고 다음 단계로 진행해도 되겠어." 그 짧은 한마디에는 미지의 거대한 계획을 조용히 집행하려는, 단호하고도 알 수 없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무의미한 루틴 속에서

매일 밤을 삼킨 새벽,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시간,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지만 소년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발걸음을 내디뎠다. 새벽 달리기와 뒤이은 근육 운동으로 단련된 몸은 이제 지치지 않는 기계처럼 그 임무를 수행했고, 정오부터 자정까지 12시간 내내 편의점이라는 작은 우주를 관리하며 세상의 틈새를 살아냈다. 그리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좁은 방, 몸의 모든 신경이 더 이상의 저항을 거부하며 바닥에 닿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런 소모적인 잠조차도 찰나에 불과하여, 그의 몸은 마치 태엽 감긴 시계처럼 정확히 새벽 5시를 알리며 다시 눈을 뜨게 만들었다. 날씨가 아무리 변덕을 부려도, 몸이 아무리 피로를 호소해도, 이 모든 반복되는 일과는 단 한 번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굴레처럼 말이다.

 

소년은 그렇게 쌓아 올린 피와 땀으로 저축한 돈으로 언젠가 대학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잠시라도 경험해 보고자 했으나, 잔인하게 이끌리듯 반복되는 삶의 무게 속에서는 통장 잔고는 숫자를 늘려갈지언정, 정작 공부할 시간은 단 한 조각도 허락되지 않았다. 달리기나 운동처럼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유일한 위안마저 희생하고 공부를 위해 무리를 감수하며 학원에 등록했지만, 강의실의 정적은 그의 지친 몸을 더욱 깊은 잠으로 유도했고, 결국 편의점 출근 시간에 지각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노력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쉽게 허물어지는 듯했다.

 

한 줄기 의지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두 시간의 달리기 코스를 벗어나 처음으로 공설종합운동장을 가로지르고, 심지어 그 너머의 예술고등학교까지 내달리고 돌아왔을 때, 휴대폰에 찍힌 거리는 믿을 수 없는 38킬로미터라는 숫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은 이제 지쳐 비틀거렸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이 정도라면, 어쩌면 마라톤 같은 것에라도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한계라고 믿었던 벽 너머의 세상에 대해 어렴풋이 상상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날이었다. 뜻밖에도 편의점 주인이 직접 찾아와 그에게 예상치 못한 제안을 건넸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어. 이제부턴 월급은 그대로 받을 테니 하루 8시간만 일해도 괜찮으니, 남은 시간에는 학원이라도 다녀 보렴." 주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이미 등록까지 마쳐진 입시학원 수강증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잠시 다니다가 갑작스레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 남게 된 것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학원 분위기나 파악할 겸 다녀 보라"고 무심한 듯 건네주었다. 그렇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 만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대입 공부라는 또 다른 전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미지의 문턱에서

학원 강의실은 낯선 정적에 잠겨 있었고, 오랜만에 마주한 교과서와 문제들은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여전한 피로는 금세 그를 졸음에 빠뜨렸다. 열흘쯤 지났을까, 규칙적인 등원 덕분인지 강의실의 공기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더 이상 졸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맥락 없이 귀를 스쳐 지나가는 강사의 설명은 그의 머릿속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수많은 공식과 이론이 어지럽게 얽혀 있었고, 그는 그 덩어리 속에서 길을 잃은 작은 조각배와 같았다.

 

결국 그는 4시간 동안의 강의를 모두 듣기보다는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오직 수학 강의 하나만을 집중해서 듣고 곧바로 학원을 나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인터넷 강의를 결제했다. 그리고 자신만의 속도로 수학 과정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끈기 있게 복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꾸준히 지식의 벽을 두드리자, 그의 머리가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혹은 저 깊은 바닷속에서 숨겨져 있던 보물이 서서히 떠오르는 것처럼, 점차 활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수학에서의 작은 성공에 힘입어 영어 강의 역시 추가로 듣기 시작했다. 그의 잃어버렸던 학습 능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기회, 또 다른 벽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그는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볼 겸 '경험 삼아' 대학 입학시험을 치렀다. 예상대로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가 꿈꾸던 이 도시의 명문 대학들은 여전히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희망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근 지방의 이름 없는 대학이라면 간신히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점수였다. 그는 인문계열에 지원했고, 예상대로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여전히 ''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는 등록금을 낼 형편이 되지 못했고, 결국 합격 통지서 위에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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